Archive | 12월, 2019

일상기록 191230

내가 요즘 SNS상에서 일상적으로 포스팅을 체크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대표적으로 황교익, 윤서인, 김윾머, 신준경이 있다. 이 넷은 나름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래서 이들이 올리는 글들이나 그 글들에 대한 반응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 일반 대중의 사고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한 차례 정도씩은 둘러보고 있는 편이다.

물론 뭔가 배우려는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은 따로 있고, 이들에게선 단 1도 그런 목적이 없다. 정말 형편들이 없는데, 그래도 들여다 보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인들의 평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각자가 스스로의 세계를 설계하고 만들어 갈 능력도 의지도 관심도 없이 성장을 하다가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집단’은 곧 ‘자아’다. 내가 속한 집단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각자 흥미나 관심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건 자연스러운 사회 활동이지만, 한국 사회의 패거리 문화가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그 순서마저도 뒤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특정 집단이나 부류에 들어가기 위해 흥미나 관심을 만든다는 얘기다.

애초에 집착하고자 할 만한 대상도 많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금전적 성공만을 목표로 삼느라 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흥미나 관심은 가능한 외면하거나 뒤로 미뤄온 채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해 자신이 맘에 드는 ‘남’을 골라 그를 추종함으로써 자신을 그려가는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란 거고, 앞서 언급한 네 명이나 그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자아를 설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차별화 된 아이덴티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도 자연스레 설명이 된다. 평소에 메시지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내 아이덴티티를 남을 통해 설정할 수 있는 거니까.

우파니 좌파니 하는 것 역시 대부분 인물 기준이다. 누구를 좋아하면 우파, 싫어하면 좌파. 스스로를 규정하는 집단을 선택할 때부터 메신저를 보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놓고 따질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요즘 소위 극우 유튜버들의 채널에 들어가보면 ‘반중친미’라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마치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상징하는 선언처럼 쓰이는데, 이 말이 한심하고 안 하고를 떠나, 난 이게 한국의 평균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응징’ 어쩌구 하던 놈이나 틈만 나면 ‘반중친미’를 하냐고 묻고 다니는 놈이나… 그냥 단순히 심심해서 돌아다니다 댓글이나 남기는 그런 수준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국은 뭐든 쉽게 종교화가 되는 거라고도 본다. 종교의 갯수는 일본이 훨씬 많지만, 광신도는 한국이 훨씬 많다. 한국은 종교가 아닌 대상도 종교화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자아, 즉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갖는 건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건 틀림없다. 근데, 그 중요한 걸 나 스스로 만들기 보다는 간단히 외부의 이미지에 의존하려고 하다보니 자신이 눈이 먼 지도 모른 채 맹목적인 추종을 하는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열심히 따를 수록 내 자아가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 들테니까 말이다.

일상기록 191224 – 2019년 리뷰

19년은 18년에 비해 알차게 보낸 느낌이 든다. 경제적 성과로 보면 뭐 거기서 거기였지만, 확실히 하루 하루 지나가는 속도가 느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듯 하다. 작년 한 해의 화두가 노래였다면, 올해의 화두는 아무래도 유튜브였다.

노래는 여전히 상업적으로 쓸모가 없는 수준이지만, 18년 상반기 내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연습과 고민 덕에 그 이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레벨업이 되었다는 점에서 절반 정도의 성공, 혹은 썩 나쁘지 않은 출발 정도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 18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인 한 해였다.

반면, 올해는 알차게는 보냈지만, ‘성장’면에선 완전히 실패한 한 해였다. 새로운 도전이 없었다. 유튜브로 수익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건 도전이 아니라 사실상 안주였다. 더 이상 새로운 시도보다는 그동안 해 왔던 것들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보고자 한 거였으니까. 시작이야 어쨌든 수익이라도 만들어냈으면 또 다른 의미의 성장을 했을테지만, 그것도 안 되었으니 이래저래 실패로 규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유튜브 자체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환경이 많이 바뀐 상태였고, 또, 기본적으로 유튜브가 마케팅 비지니스라고 보면, 마케팅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유튜브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했던 시도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케팅 비지니스에 도전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케팅과 관련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따로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참고로, 마케팅과 관련해선 전공은 고사하고 브랜딩과 관련한 책 한 권 읽은 게 전부인 내가 가진 마케팅과 관련한 지식은 시장에서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고 가능한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근데 고민을 할수록 돈을 만들기 위해 넘어서야 할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난 그걸 넘고 싶은 욕망이 일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벽은 뭐 아주 못 넘을 높이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내 의지 문제였다.

유튜브 내에서 내 채널을 널리 알린다는 건 온/오프를 막론하고 친구는 물론 인간들과 관계를 잘 맺지 않는 나로서는 처음부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팔릴만한 물건을 만드는 데에 집중을 했었다.

처음엔 뉴스 상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건드렸다가 유튜브 상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에 올라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가 적당히 관심도 끌고, 더불어 채널 홍보의 실마리도 찾는 듯 했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터져나왔다.

사실상 처음으로 악플이란 걸 받아봤는데, 악플 내용보다 그 악플을 단 사람의 수준에 너무나 큰 실망을 했다. 생각보다 훨씬 그 충격이 큰 실망이었다. 뉴스라던가 다른 사람들의 영상에 달리는 형편없는 댓글들을 볼 때도 한심함을 안 느낀 건 아니었지만, 막상 내가 만든 영상에 그런 댓글들이 달리니까 이건 정말 참담하기까지 했다.

‘이런 것들 보라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이 생각이 들고나니 도저히 영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같고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상을 찬찬히 보고 안 보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무식했다.

내가 똑똑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너무 무식하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그들은 유튜브를 즐기는 한국의 대중 일반을 말한다. 무식하다는 건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능력조차 없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유식한 지, 무식한 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거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 무식한 대중들은 그걸 파악할 능력조차 없으니 언제나 인터넷과 유튜브에 뿌려지는 엉성한 떡밥에도 우르르 몰려가 의미없는 선동의 그물 안에 갖혀 퍼덕댄다.

세상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 근데 이 사실마저 모르는 수준에선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세상은 틀리거나 혹은 다른 사실로 인식을 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신이 지키려는 게 무식인지 자존심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일단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창피함을 벗어나려는 무례함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의 악플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악플을 보았을 때 받은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짜증은 엄청 났다.

문제는 이런 이들을 외면해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 아니, 외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나도 그들이 갇혀있는 그물 속으로 들어가 같이 퍼덕거려야 비로소 수익 창출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는 건데, 그게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대략 1년 정도 이것 저것 해보고 나니, 유튜브에서 돈을 버는 방향이 대략 정리가 되었다. 숫자는 물론이고 성향도 그리 다양하지 않은 한국의 유튜브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엔, 유행하는 이슈를 잡아 거의 그들 수준에서 컨텐츠를 만들거나, 아니면 동경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월등한 수준을 보여줘야 하는데, 전자는 하기가 싫고, 후자는 할 수가 없다. 내 수준을 왕창 낮추거나 왕창 올려야 한다는 건데, 둘 다 무리라는 얘기.

그래서 컨텐츠는 물론이고, 아예 플랫폼을 바꾸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이것 저것 고민 중이다. 솔직히 배부른 고민이다. 돈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다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고민인 것이다. 그러나, 절박하지만 않을 뿐, 필요나 욕심까지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이 큰 것이다.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걸 굳이 가지 않으면서 또 한 편으론 무의미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는 하고 싶지 않은 상황. 고민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다행인 건, 내년엔 이젠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진 일본어를 통해 성장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거 같다는 것 정도일 듯 하다.

올해는 여기까지. ^^

Powered by WordPress. Designed by WooThe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