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190409

이 글에 남긴 내 댓글에 박작가는 왜 광고나 협찬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는 지 파악을 해 봐야겠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헛발질.

박작가는 분명 한국 사회의 주류 혹은 주류를 지향하는 이들의 방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제도나 관습과 관련한 얘기일 뿐, 그 역시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그럼 자본주의의 틀에서 사는 그가 왜 광고나 협찬을 떳떳하게 요구하거나 영업을 하지 못 한 것일까. 내 결론은 간단하다. 그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지만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순종적이지 않고 잘 개긴다고 피지배계급이 아니야… 같은 얘기가 아니다. 계급은 성격이나 성질로 정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는 계속 얘기하지만, 자본가의 이익, 즉 지배계급의 이익 증대이지, 피지배계급의 이익 따위가 아니다. 피지배계급은 그저 지배계급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해주면 되는 역할로 끝.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계급이 존재하면 거기엔 계급 내의 윤리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윤리를 만들어 주입을 시키는 것처럼 자본주의 시스템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공고히 하는 계급 윤리를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전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들에게 요구되는 계급 윤리는 무엇일까. 난 겸손, 절제 같은 거라고 본다. 다시 말해 피지배 계급들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급적 자신들의 분수를 알고 주어진 상황에 잠자코 적응을 해주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

근데, 이런 ‘계급’, ‘지배’ 같은 말을 쓰면 불편해 하는 피지배 계급들이 많은데, 이게 결정적으로 잘 훈육된 증거라고 본다. 당신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유롭게 사는 거처럼 보이는 박작가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기 포트를 챙겨가야 한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당연하지. 피지배 계급들 한테는. 근데, 그게 당연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지배계급들. 대략 감이 오는가? 생계를 위해 이런 저런 조건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내 삶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어야 내 삶을 지배할 수 있다.

이번에 승리를 비롯한 젊은 연예인들이 문제를 일으킨 모양인데, 그저 지배 계급으로 올라서자마자 흥분들을 한 건지 샴페인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터뜨려서 문제가 됐을 뿐, 계급적 지위와 관련한 변화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 이들이 지배 계급으로 올라 설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윤리와 도덕성이 아닌 천문학적인 양의 돈 때문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들이 잃을 건 윤리와 도덕성이지 돈이 아니기 때문. 앞으로 들어올 양은 좀 줄겠지만, 이미 쌓아둔 돈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니까.

다시 말해 절제와 겸손 따위를 행동 윤리로 삼도록 길러진 피지배 계급의 시각에선 그들은 이제 이 사회에서 매장될 지도 모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 여전히 그들은 승자고 겸손한 당신은 패자. 여전히 세상의 권력은 그들에게 돈이 있는 한, 그들을 향할 것이고 도덕적이고 겸손한 당신에게 줄 관심 따윈 남아있을 이유조차 없다.

광고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예인들은 말 그대로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 팬들의 인기가 바로 자본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서울방송 초창기 ‘안녕하시렵니까’로 빅브레이크를 한 신동엽은 서울에선 거칠 것이 없었지만, 지방 행사에만 가면 동물의 왕국의 곰 정도로 나오던 박승대보다도 개런티가 적었었는데, 당시는 아직 지역 민방이 시작 전이라 서울방송은 그야말로 서울에서만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의 신동엽의 인지도는 박승대보다 못했고, 그게 개런티에 반영이 된 것이다.

왜 인기가 돈이 되는 걸까. 바로 ‘광고’ 효과 때문이다. 광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팔고자 하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신뢰감’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잘 아는 사람, 거기다가 이미지까지 좋은 사람이 나와서 좋다고 해주는 게 도움이 되니까.

굳이 물건을 팔지 않아도 된다면? 당연히 광고는 필요없다. 극단적으로 마르크스가 바라던 사회주의가 실현이 되었다고 가정을 해 보자. 지금 현재 로봇 등을 이용한 어마어마한 생산력이 모두 사회의 소유가 되어 생산량이 소수의 이익이 아닌 다수의 필요에 의해 조절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생산시설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좀 더 화려한 모양에 과도한 기능 등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쓸모이기 때문에 쓸모에 맞게 필요한 양을 생산하는 데에 촛점이 맞춰질 것이고, 디자인은 심심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적당한 과정을 거쳐 필요한 만큼 내게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굳이 쓸모 이상의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진다. 사람들이 편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끊임없이 리노베이션을 하고 개선된 상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인들이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닭을 키우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닭이 대량으로 사육되고 생산되어 값이 싸지니 먹게 된걸까. 한국이 조상 대대로 식용유와 밀가루를 생산하던 나라라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 걸까? 사람들이 양념 치킨을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콘시럽 공장이 들어섰을까? 편리함은 또 다시 사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어쨌든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 적당히 삶에 필요한 기본 물품들이 주어지고,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뭐하며 살까…를 궁리하는 세상이 오면, 예컨데 우리는 이번 달에 어떤 물건들이 나오고 기능이 뭐가 있고 언제 받을 수 있는 지 정도… 즉 정보만 받으면 된다. 굳이 그 상품을 만드는 데에 관여를 하지도 않은 유명인을 보고 신뢰감을 강요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은 피지배 계급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업을 지배하는 소수의 절제하지 않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걸 팔아내기 위해 광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노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는 말하자면 자본주의를 굴리는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다. 광고가 필요한 자들은 적당히 살만큼만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위에서 얘기한 인기를 모은 이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안겨주는 이유는 그 보다 더 천문학적인 돈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유튜브는 그런 자들에게 말하자면 좀 더 많은 유명인들을 제공해주는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유튜브를 무슨 가난한 작가들을 먹여 살려주는 복지 재단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거 같은데, 이건 그냥 단순히 무식해서 생기는 오해일 뿐이다. 적은 비용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 같지만, 굳이 데리고 있으면서 관리하기 귀찮은 유명인들을 데리고 광고 사업을 하는 대신 따로 관리 안 하고 돈만 조금 떼어주면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한 광고 수익을 올리는 거대한 광고판일 뿐이다. 한 명의 대 스타 대신 수만명의 자잘한 스타들을 이용한다고나 할까.

유튜브에서 구독자가 1000명이 안 되는 채널에는 광고를 안 달아주는 이유는 당연히 광고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의미있는 영상은 훌륭한 컨텐츠와 수준 높은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상이 아니고, 구독자와 노출이 잘 되는 영상이다. 내용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면 된다. 뭐든 간에 자극이 되어 노출만 많이 되면 오케이.

이런 판에 뛰어들어서 물욕 따위 개나 줘버린 듯 온갖 고고한 척 하며 ‘난 그저 먹고 살만큼만 벌거야’하고 있는게 과연 진짜로 고고하고 품격있는 짓일까. 댓글에도 적었지만, 은근하게 하든 대놓고 하든 목표는 고고함이 아니라 ‘돈’에 맞추는 게 유튜브 판에서 살아남는 길이고, 그럴 거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가이드나 하면서 근근히 살 일이다. 아,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러면 차라리 홍대 앞에서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관심만 필요하다면.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지도 모른다. ‘고고하고 품격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가고 인기가 올라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물론이다. 똥도 팔리면 상품이 되는 세상에서 고고함과 품격은 당연히 좋은 재료이다. 단, 고고함이 목적이 되면 안 되고, 고고함을 팔아 돈을 버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지금 박작가가 미니멀리스트로서 내뿜고 있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종교인이나 수도자 같은 불필요한 이미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이미지를 잘 살리고 그 이미지에 빠져있는 빠들은 물론, 빠들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만들어야 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태리에 일로 출장을 가지 않아도 최소 장비, 비용으로 가는 여행을 협찬을 받아 다녀와도 된다. 영향력을 키우면 협찬 조건은 받는 쪽에서 달 수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다. 지배계급까지 가지 않아도 최소한 피지배계급을 벗어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는 도대체 무슨 재주로 이렇게 럴럴하게 살 수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건 7월 달에 커피한잔 놓고 얘기하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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