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4+1

나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머리 속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뽑아낼 때 정리를 잘 못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따로 수련을 하거나 치열하게 고민을 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제 적은 헛발질4를 자고 일어나서 다시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도 잘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어서 다시 한 번 최대한 간단하게 하려던 말을 해 보기로 했다. 잘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선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 역시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아니, 했었다. 심지어 난 파트타임이나 알바도 아닌 풀타임 직장이었고, 그처럼 예의 바르지도 않았다. 당시 박작가도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잘 아는 상황. 퇴근 보고를 사장에게 갔다가 다음 날 해도 되는 보고를 가기 전에 해 달라고 해서 해 주기로 했는데, 보고서를 들고 왔더니 퇴근 복장 그대로 오는 건 결례니 뭐니 하길래 보고서를 면전에 집어 던지고 그걸로 회사를 관둔 전력이 있다.

이거는 그도 아는 사건이라 적은 것이고 그가 모르는 것까지 합치면, 나도 유튜브 호외편을 10편도 더 만들 수 있다. 내가 어제 한 얘기에 비춰보면 나 역시 제대로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에 적응을 하지 못한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본론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자본주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운전을 할 줄 안다고 자동차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로 시간과 마음을 들여 공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국가의 교육시스템과 언론 미디어들을 통해 가르쳐진 정도 밖에 알지 못한다.

당연히 자본주의에 의해 돌아가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는 국가에서 체제를 흔들만한 내용들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은 불과 30년전만 해도 자본론이란 책을 출간했단 이유로 출판사 사장이 구속되는 그런 나라였다.

학교 공부를 열라 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자본주의인데 전반적으로 공부를 멀리 했던 사람이라면, 그는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르니, 언론과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세상이라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쨋든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권력이나 부에 굴하지 않는 것이 정의이고 끝까지 내 자존심을 접지 않는 걸 불의한 세상에 맞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거라 착각하며 어설픈 선구자 놀이를 즐기고 있었던 걸 지도 모른다.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가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한국 사회처럼 인정욕구가 과도한 곳에서 고독한 선구자 캐릭터는 절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다. 다만,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고 보는 수준으로는 아차하는 순간에 듭보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함정.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아무리 더러워도 자존심 접고 꾹 참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싸움의 대상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내가 지금 분노하는 대상이 과연 품격이고 뭐고 간에 구매력으로 퉁치는 시스템인 건지, 그 시스템 안에서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가며 쥐똥만한 구매력으로 잰 체하는 또 한 명의 하찮은 인간인 건지.

품격 떨어지는 인간들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내 눈 앞에 보이지 말아야 좋은 세상이란 생각은 그저 매우 파쇼적인 생각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계속 맘에 안 드는 인간들을 서로 제거해 나가다보면 드디어 인간들이 사라진 그야말로 ‘좋은’ 세상이 되긴 하겠지만… ㅋㅋ

어쨌든 세상은 내 맘에 안 드는 놈들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내가 맘에 안 드는 인간들에겐 세상을 망치는 원흉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케이스도 머리 긴 남자 땜에 세상이 엉망이 된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있으니 일어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걸 구리다고 탓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왜 남의 의견에 지금이 어떤 시대냐며 토를 다는 걸까. 이번 건은 거래의 조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 거나 마찬가지이니 다르다고 생각하나? 그가 박작가의 머리카락에 대한 신념이나 원칙까지 다 바꾸길 원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냥 단순히 당장 지 눈 앞에 맘에 안 드는 거만 안 보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뭔가를 팔고 사는 거래에서 양자 간에 서로 조건을 주고 받으며 흥정을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게다가 어제도 말한 거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조건이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구매력이니까. 남는 건 조건을 받아 거래를 성사 시킬 것이냐 마냐의 선택일 뿐이다. 상대방의 품격에 대해 왈가왈부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에 대해선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다음 시간에…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머리털 같이 상품성이 떨어지는 거에 자존심 같은 걸 거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고 어설픈 짓이다. 아무리 편리하고 장점이 있다고 해도 그게 300만원 이상의 가치가 없다면 말이다. 이번 사건에서 그가 머리털이 아닌, 예를 들어 그의 독특한 인솔 방식이라던가 하는 좀 더 상품성 있는 요소에 자존심을 걸었다면 오히려 그의 상품가치가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참고로 난 최근 지난 10년여간 트레이드 마크처럼 기르던 수염을 간간이 들어오는 웨딩 일 때문에 깨끗이 밀고 있는데, 앞에 나서서 촬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석에 앉아 편집만 하는 거지만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 생각이 조금 바뀌니 전혀 불편하지 않다. 한 번 버려 보면 역시 별 거 아닌 게 자존심이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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