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190409+1

광고나 협찬을, 다시 말해 돈을 밝히는 걸 어색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떻게 해도 달성하지 못할 거 같은 목표에 대한 쉴드일 가능성도 있다. 무슨 얘기냐면,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싫어서 안 하는 거라고 처음부터 발을 빼는 전략이라는 것.

다행히 대한민국은 조선 시절부터 내려오는 청백리 사상 같은 게 있어서 돈을 밝히지 않는 것은 꽤 고고하고 품격있는 태도라는 인식이 있으니 쉴드 치고는 고급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왕년의 지배 계급들의 윤리였으니까.

근데,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 정해지는 신분제 사회에서나 부릴 수 있는 여유일 뿐이고… 결국 그렇게 고고한 척 여유들 부리다가 막판에 엉망이 되었으니 뭐 그 때나 지금이나 실속없는 허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지배 계급이라는 계급 의식만 있었어도 굳이 그렇게 있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본주의 체제에선 노동자들의 몸 값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피지배 계급이 계급 의식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피지배 계급이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당하게 맞서거나 혹시 그 구조를 바꾸려고 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앞 글에서 얘기한 대로 계급 의식이 아닌 윤리 차원에서 사고 방식을 묶어두려고 하는 것이고 그 의도대로 길러진 피지배 계급들은 이런 식으로 어설픈 지배계급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기업들이 설마 그렇게 할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고를 통해 만나는 그들의 이미지는 언제나 친구 같고 가족 같고 또 어떨 때는 국가대표 같으니까. 한 마디로 우리 편인데 설마… 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은 대놓고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걸 대신 해주는 게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피지배 계급을 위해 존재한 국가는 없었다. 19세기 말 민족 국가의 탄생도, 아니, 민족이란 개념 자체도 지배계급 엘리트들의 작품이지, 피지배 민중들이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국가의 최대 임무는 체제의 유지이고, 지금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 과정 중에 나타났듯 민주주의 역시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도입된 또 다른 대안이었고, 민주주의는 다만 의견과 정보의 흐름을 규정하는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일정 지역 내에서 가장 강력한 폭력을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독점하는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일 뿐이고, 여기서 체제의 유지란 지배 계급의 지배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게 된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교육. 다른 건 몰라도 국가가 마치 계급 간 갈등을 조정하는 공정한 중재자라는 이미지 만큼은 확실하게 주입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나라’의 이미지는 공정해야 하는 걸로 박혀있으니까. 체제가 아니라 그 대리인의 문제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중재자가 아니라 체제의 수호자라는 걸 알면, 국가를 탓하거나 내가 주인이라거나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해도 된다. 체제가 맘에 안 들면 국가는 그 체제와 함께 없애 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니까.

너무 삼천포로 빠진 느낌. ㅠㅠ 어쨌든 쓸 데 없는 선비놀음은 멈추고, 기왕 시작한 거 돈을 제대로 밝혔으면 좋겠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제대로 저으라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

헛발질 190409

이 글에 남긴 내 댓글에 박작가는 왜 광고나 협찬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는 지 파악을 해 봐야겠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헛발질.

박작가는 분명 한국 사회의 주류 혹은 주류를 지향하는 이들의 방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제도나 관습과 관련한 얘기일 뿐, 그 역시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그럼 자본주의의 틀에서 사는 그가 왜 광고나 협찬을 떳떳하게 요구하거나 영업을 하지 못 한 것일까. 내 결론은 간단하다. 그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지만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순종적이지 않고 잘 개긴다고 피지배계급이 아니야… 같은 얘기가 아니다. 계급은 성격이나 성질로 정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는 계속 얘기하지만, 자본가의 이익, 즉 지배계급의 이익 증대이지, 피지배계급의 이익 따위가 아니다. 피지배계급은 그저 지배계급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해주면 되는 역할로 끝.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계급이 존재하면 거기엔 계급 내의 윤리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윤리를 만들어 주입을 시키는 것처럼 자본주의 시스템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공고히 하는 계급 윤리를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전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들에게 요구되는 계급 윤리는 무엇일까. 난 겸손, 절제 같은 거라고 본다. 다시 말해 피지배 계급들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급적 자신들의 분수를 알고 주어진 상황에 잠자코 적응을 해주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

근데, 이런 ‘계급’, ‘지배’ 같은 말을 쓰면 불편해 하는 피지배 계급들이 많은데, 이게 결정적으로 잘 훈육된 증거라고 본다. 당신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유롭게 사는 거처럼 보이는 박작가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기 포트를 챙겨가야 한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당연하지. 피지배 계급들 한테는. 근데, 그게 당연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지배계급들. 대략 감이 오는가? 생계를 위해 이런 저런 조건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내 삶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어야 내 삶을 지배할 수 있다.

이번에 승리를 비롯한 젊은 연예인들이 문제를 일으킨 모양인데, 그저 지배 계급으로 올라서자마자 흥분들을 한 건지 샴페인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터뜨려서 문제가 됐을 뿐, 계급적 지위와 관련한 변화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 이들이 지배 계급으로 올라 설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윤리와 도덕성이 아닌 천문학적인 양의 돈 때문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들이 잃을 건 윤리와 도덕성이지 돈이 아니기 때문. 앞으로 들어올 양은 좀 줄겠지만, 이미 쌓아둔 돈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니까.

다시 말해 절제와 겸손 따위를 행동 윤리로 삼도록 길러진 피지배 계급의 시각에선 그들은 이제 이 사회에서 매장될 지도 모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 여전히 그들은 승자고 겸손한 당신은 패자. 여전히 세상의 권력은 그들에게 돈이 있는 한, 그들을 향할 것이고 도덕적이고 겸손한 당신에게 줄 관심 따윈 남아있을 이유조차 없다.

광고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예인들은 말 그대로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 팬들의 인기가 바로 자본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서울방송 초창기 ‘안녕하시렵니까’로 빅브레이크를 한 신동엽은 서울에선 거칠 것이 없었지만, 지방 행사에만 가면 동물의 왕국의 곰 정도로 나오던 박승대보다도 개런티가 적었었는데, 당시는 아직 지역 민방이 시작 전이라 서울방송은 그야말로 서울에서만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의 신동엽의 인지도는 박승대보다 못했고, 그게 개런티에 반영이 된 것이다.

왜 인기가 돈이 되는 걸까. 바로 ‘광고’ 효과 때문이다. 광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팔고자 하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신뢰감’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잘 아는 사람, 거기다가 이미지까지 좋은 사람이 나와서 좋다고 해주는 게 도움이 되니까.

굳이 물건을 팔지 않아도 된다면? 당연히 광고는 필요없다. 극단적으로 마르크스가 바라던 사회주의가 실현이 되었다고 가정을 해 보자. 지금 현재 로봇 등을 이용한 어마어마한 생산력이 모두 사회의 소유가 되어 생산량이 소수의 이익이 아닌 다수의 필요에 의해 조절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생산시설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좀 더 화려한 모양에 과도한 기능 등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쓸모이기 때문에 쓸모에 맞게 필요한 양을 생산하는 데에 촛점이 맞춰질 것이고, 디자인은 심심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적당한 과정을 거쳐 필요한 만큼 내게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굳이 쓸모 이상의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진다. 사람들이 편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끊임없이 리노베이션을 하고 개선된 상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인들이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닭을 키우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닭이 대량으로 사육되고 생산되어 값이 싸지니 먹게 된걸까. 한국이 조상 대대로 식용유와 밀가루를 생산하던 나라라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 걸까? 사람들이 양념 치킨을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콘시럽 공장이 들어섰을까? 편리함은 또 다시 사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어쨌든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 적당히 삶에 필요한 기본 물품들이 주어지고,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뭐하며 살까…를 궁리하는 세상이 오면, 예컨데 우리는 이번 달에 어떤 물건들이 나오고 기능이 뭐가 있고 언제 받을 수 있는 지 정도… 즉 정보만 받으면 된다. 굳이 그 상품을 만드는 데에 관여를 하지도 않은 유명인을 보고 신뢰감을 강요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은 피지배 계급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업을 지배하는 소수의 절제하지 않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걸 팔아내기 위해 광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노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는 말하자면 자본주의를 굴리는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다. 광고가 필요한 자들은 적당히 살만큼만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위에서 얘기한 인기를 모은 이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안겨주는 이유는 그 보다 더 천문학적인 돈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유튜브는 그런 자들에게 말하자면 좀 더 많은 유명인들을 제공해주는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유튜브를 무슨 가난한 작가들을 먹여 살려주는 복지 재단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거 같은데, 이건 그냥 단순히 무식해서 생기는 오해일 뿐이다. 적은 비용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 같지만, 굳이 데리고 있으면서 관리하기 귀찮은 유명인들을 데리고 광고 사업을 하는 대신 따로 관리 안 하고 돈만 조금 떼어주면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한 광고 수익을 올리는 거대한 광고판일 뿐이다. 한 명의 대 스타 대신 수만명의 자잘한 스타들을 이용한다고나 할까.

유튜브에서 구독자가 1000명이 안 되는 채널에는 광고를 안 달아주는 이유는 당연히 광고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의미있는 영상은 훌륭한 컨텐츠와 수준 높은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상이 아니고, 구독자와 노출이 잘 되는 영상이다. 내용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면 된다. 뭐든 간에 자극이 되어 노출만 많이 되면 오케이.

이런 판에 뛰어들어서 물욕 따위 개나 줘버린 듯 온갖 고고한 척 하며 ‘난 그저 먹고 살만큼만 벌거야’하고 있는게 과연 진짜로 고고하고 품격있는 짓일까. 댓글에도 적었지만, 은근하게 하든 대놓고 하든 목표는 고고함이 아니라 ‘돈’에 맞추는 게 유튜브 판에서 살아남는 길이고, 그럴 거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가이드나 하면서 근근히 살 일이다. 아,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러면 차라리 홍대 앞에서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관심만 필요하다면.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지도 모른다. ‘고고하고 품격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가고 인기가 올라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물론이다. 똥도 팔리면 상품이 되는 세상에서 고고함과 품격은 당연히 좋은 재료이다. 단, 고고함이 목적이 되면 안 되고, 고고함을 팔아 돈을 버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지금 박작가가 미니멀리스트로서 내뿜고 있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종교인이나 수도자 같은 불필요한 이미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이미지를 잘 살리고 그 이미지에 빠져있는 빠들은 물론, 빠들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만들어야 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태리에 일로 출장을 가지 않아도 최소 장비, 비용으로 가는 여행을 협찬을 받아 다녀와도 된다. 영향력을 키우면 협찬 조건은 받는 쪽에서 달 수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다. 지배계급까지 가지 않아도 최소한 피지배계급을 벗어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는 도대체 무슨 재주로 이렇게 럴럴하게 살 수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건 7월 달에 커피한잔 놓고 얘기하는 걸로… ^^;;;;

헛발질 190407

이젠 뭐 거의 영상마다 후기를 적는 느낌. ㅋㅋ 이번 영상은 내용 면에선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라 특별히 덧붙일 얘기는 없고, 영상을 하는 사람이니 영상 얘기나 좀…

나도 유튜브를 하지만, 유튜브로 영상을 시작한 게 아니라서 접근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이제는 박작가도 대략 나름의 제작 노하우가 생겼을테고, 각자의 제작 환경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제작 방법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 이것 역시 그냥 참고만 하시길.

유튜브로 영상을 시작한 사람들과 영상을 하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영상 제작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수준일텐데, 그래서 오히려 유튜브로 영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더 신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내가 유튜브에서 주로 보는 게, 한동안 관심을 끊었던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한 촬영 장비나 제작 기술과 관련한 영상들이라, 제작자들이 주로 영상을 하다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데, 유튜브로 본격적으로 돈벌이가 시작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충 만든다.

영상 수준이 엉망이란 얘기가 아니고, 제작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충 만든 게 보인다는 것이다. 혼자서 영상을 만드는 거에 대한 한계도 알고, 또 대략 얼마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지 알기 때문에 가능한 빠르고 쉬운 방법을 택한다는 것. 그러다가 컨텐츠가 좋아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점점 성의를 다하는 느낌.

유튜브로 영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완성도는 떨어져도 열심히 했다는 게 보이고, 그래서 오히려 기존 영상인들이라면 하지 않을 시도들을 하기 때문에 결과가 신선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건 제작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얘기이고, 구성이나 기획의 차원에선 초심자의 장점이 따로 드러날 게 없다고 본다.

난 유튜브의 매체 특성이 텔레비젼과 비교해서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상 제작의 문법이 아예 다른 게 아니라는 것. 여기서 영상 문법이라 함은 흔히 얘기하는 내러티브 영상의 편집술 차원은 아니고, 그냥 기본적으로 영상을 만들어내는 ABC 정도라고 보면 될 듯

유튜브 만의 문법은 물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 카메라를 고정해서 한 대만 쓰기 때문에 점프 컷에 관대하다거나 하는… 하지만, 그게 영상 일반의 제작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을 무시하면 소통이 안 되는 거처럼, 유튜브 영상에서도 기본적인 것들은 고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것에 대해 간략히 정리를 하면, 영상 제작 과정은 프리 프러덕션, 프러덕션, 포스트 프러덕션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건 15초짜리 광고든 2시간짜리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든 다 똑같다. 좀 더 확대하면, 음악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대략 창작의 과정은 큰 틀에서 이 세 과정을 거친다.

영상업에 종사한다고 이 세 과정을 다 잘 아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서 1인 제작자들이 많아 보이지만, 유튜브는 물론이고 컴퓨터 편집이 일상화 된 게 겨우 10년을 좀 넘긴 수준이라 여전히 영상업은 대단히 분업화 된 업종이다. 다시 말해 주류 매체의 영상은 말할 것도 없고, 유튜브 안에서도 그럴싸 한 영상들은 대부분은 1인 프러덕션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는 결국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려면 가능한 1인 제작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

1인 프러덕션의 가장 큰 단점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서 촬영과 편집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영상을 충분히 만들지 않은 단계라고 본다. 1인 프러덕션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지속성의 확보이고, 이건 프리 프러덕션 과정에서 생긴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말을 하고, 구성을 어떻게 하고 하는 것들을 만드는 구성작가의 역할에서 의외로 부하가 많이 걸리게 된다는 것.

상대적으로 영상 자체의 퀄리티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곳이 유튜브라 촬영이나 편집의 부족함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지만, 컨텐츠의 구성이 엉성해지면, 일단 만드는 사람이 의욕을 잃게 된다. 아무말이나 막 하는 채널이라면 크게 상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뭔 얘기를 할까 고민하는 건 생각보다 큰 부담이다.

매주 만들 얘기들이 쌓여서 골라야 하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할 얘기를 고민하지는 않아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매번 이 단계부터 진을 빼고 그 상태에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촬영과 편집을 하고 나면, 점점 시작 자체가 두려워지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러면 당연히 영상의 퀄리티는 물론이고 재미도 없어진다.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직접 대면하는 게 감정의 전달이 잘 되지 않는가. 영상은 감정의 전달이 블로그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강력하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이 재미가 없거나 힘들게 만들면 그 느낌이 전달 될 가능성이 크다.

계속 1인 프러덕션을 유지할 생각이라면 촬영이나 편집에 대한 고민보다 프리 프러덕션에 대한 부하를 어떻게 해결할 건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보지만, 이걸 처음부터 제대로 하면 초심자가 아닌 거지. ㅋ

전업 유튜버들 중에는 물론 꾸준히 1인 프러덕션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근데 이런 이들의 특징은 컨텐츠도 구성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리뷰를 하거나 작업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컨텐츠의 폭을 좁혀 놓았기 때문에 매 회 구상을 할 때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이건 지속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온다.

예를 들어 박작가의 경우, 미니멀리스트라는 큰 주제는 갖고 있지만, 실제로 지금 이 채널의 컨텐츠는 박작가 자신이고, 그의 삶이다. 댓글들을 보면 지금 기대 수준들이 왕창 올라와 있는 걸알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박작가의 스타성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채널에 오는 사람들 중 많은 비율이 미니멀 라이프 자체가 아니라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는 ‘박작가’를 보러 온다는 것.

뭐 때문이던 일단 사람들이 몰린다는 건 상업적으로는 절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이 관심을 상업적으로 의미있는 수익이 날 때까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냐는 거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박작가는 미니멀리스트로서 남들과 다르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하는데, 여기서 뽑아 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남았는 지 난 벌써부터 궁금하다. 왜냐하면 박작가는 본인이 남들과 아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엽기적인 수준의 ‘다름’으로 승부하는 유튜버들에 비하면 그렇게 자극적으로 다르지도 않으니까. 아무 말 잔치나 하자니 미니멀리스트라는 타이틀이 족쇄가 되어 미니멀 하기랑 관련이 없는 주제는 또 쓰기가 힘들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글로벌 거지 부부 블로그는 유튜브와는 상황이 완전 다르다. 블로그의 컨텐츠는 박작가 자신이 아니고, 그가 보여주는 색다른 ‘세상’이다.

1) 색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세상과 2)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 이 둘 중에 뭐가 더 오래 갈 수 있는 주제 같은가? 블로그가 1번이었다면, 지금 미니멀유목민 채널은 2번이다. 내가 보기엔 이미 박작가는 색다른 사람이라는 거 충분히 보여줬고, 반응은 뜨겁다. 자, 그럼 그 다음은?

그래서 이번 영상이 바람직하다고 했던 것. 내용 자체는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성이 좀 적어서 아쉬웠지만, 어쨌든 지속성 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기획이다. 일본에서 리뷰로 유명한 카즈라는 유튜버도 그런 코너가 있는데, 참고를 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참고하려면 어떻게 그가 전업 유튜버로서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 유튜브를 박작가의 블로그처럼 운영하고 있다. 주로 하는 게 리뷰이지만, 중요한 건 리뷰, 즉 약간 어수룩한 아저씨 캐릭터의 시각으로 본 가전제품 등등 이라는 거다.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일단 그의 채널에는 가전제품 리뷰라는 확실한 컨텐츠가 있다.

오늘 뭐 먹지? 하는 것과 오늘은 볶음밥에 어떤 재료를 넣을까? 를 고민하는 건 천지차이다. 카즈는 볶음밥이라는 메뉴가 정해진 상황이고, 박작가는 미니멀리스트라는 ‘부엌’만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것도 문제. 블로그에선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영상은, 더군다나 스타성에 기대는 컨텐츠는 그 스타성이 정말 확고한 레벨이라면 모를까, 업데이트 간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만큼 관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내가 하는 발음 유튜브는 솔직히 실시간으로 반응을 해야 하는 컨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난 대략 횟수를 정해 놓고 시작을 하고 있다. 목표도 1000명 채우기. 하지만, 트랜드를 타야하고 스타성에 의존하는 컨텐츠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럴려면 1인 프러덕션으로는, 더군다나 전업이 아닌 상황에서 지속성을 확보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본다.

지금 유튜브가 뜨겁긴 하지만, 솔직히 시작하자마자 이런 정도의 반응을 얻는 건 대단한 거다. 하지만, 아직 전업으로 전환하기엔 좀 애매한데, 그렇다고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하자니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다. 아직 배가 다 준비가 안 된 상황인데, 벌써 물이 엄청 들어오고 있다고나 할까. 선택은 두가지겠지. 일단 물이 들어오든 어쨌든 내 페이스대로 배를 다 완성시켜서 출항을 하거나, 아니면 일단 배를 띄우고 보는 것.

양 쪽 모두 바다로 갈 수는 있겠지만, 좀 더 빨리 그리고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물이 들어올 때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쪽이 당연히 나을 것이다. 난 물이 들어온 적이 없어서 확신은 서지 않지만, 아마도 배를 띄울 것이다. 아예 뜰 수도 없는 상태라면 모를까, 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완성은 바다 위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 방향도 일단 떠나서 조금씩 수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바다로 나가보면 또 상황이 달라지니 일단 나가는 쪽으로 선택을 할텐데… 내 느낌에,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의 박작가는 자기 페이스대로 갈 공산도 크다고 본다. 즉, 섣불리 유튜브 전업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

꾸준히 검색이 되고 노출이 될 수 있도록 미니멀 라이프 방법론 쪽으로 촛점을 맞추라고 제안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길고 천천히 가려면 미니멀 라이프를 소개하는 ‘박작가’보다는 박작가가 소개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지금 당장 배를 띄우더라도 방향은 궁극적으로 미니멀 라이프에 맞추는 게 지속적인 항해를 위해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

오늘의 헛발질은 여기까지.

헛발질 190403+1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공유했던 영상의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딱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나라의 경제 걱정을 하는 이가 있었다. 크하하하하!

다시 말하지만, 나라의 경제는 소비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굴리는 것이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 광풍이 불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비를 멈춘다고 생각하면 영향이 있겠지만, 그럴 리도 없고, 그 정도면 국가가 나선다. 아마도 박작가는 사회 불안 조장 사범으로 검거될 지도 모른다.

계급 의식이 없으니 ‘나라’라고 하면 전부 자기 일인 거처럼 생각되니 겁도 나겠지. 그러나 최소한 나 혼자 맘 편히 살겠다고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하는 수준의 사람이라면 경제의 위기라는 건 결국 자본가의 이익 감소 즉, 국가를 구성하는 전 계급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애들을 안 낳으니 문제라고 하는데, 이것도 잠깐만 뜯어보면, 노동자와 소비자가 줄어들어 생산 단가가 오르고 내수시장이 축소되는… 결국 자본가의 이익이 줄어들까 걱정을 하는 거라는 거 쉽게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이 이익 규모가 이 정도가 아니던 시절엔 국가는 둘도 많다고 했었다.

따라서 경제가 호황일 때는 이익이 왕창 생기는 계급이 아니라면 미니멀을 하던 뭘 하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라고 보면 되고 맘 놓고 미니멀 하면 된다. 자본주의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폭발해봐야 촛불 밖에 못 드는 사회에선 그만큼 빈부 격차에 대한 경계심도 느슨할 수 밖에 없다. 여튼, 박작가도 맘 편하게 미니멀 라이프를 팔아먹어도 된다.

근데, 과연 박작가나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이 2~30대 독신 남녀가 아닌 가족을 꾸린 3~40대 주부나 가장의 미니멀 라이프 욕구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을 계속 내어 줄 수 있을 지가 관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들에겐 일단 박작가의 삶 자체가 호기심의 대상이니 자극이 일겠지만,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으면 호기심도 줄게 되고, 그러면 관심들이 식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미니멀 라이프의 모델들을 만들어 그 방법론은 개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헛발질 190403

오늘은 영상 중에 언급이 되는 다른 일본 미니멀리스트들도 찾아 보았다. 역시나 결론은 미니멀 라이프는 불완전한 현실 도피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되고 불필요하게 빚을 지게 되고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압박감까지 안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이 미니멀리스트들은 개인적인 물욕, 허영심 정도에서 찾고 있으니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들도 파편화되고 개인적인 수준에 그치는 거 같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온갖 쓰레기 땜에 파리가 들끓는 게 문제인데, 쓰레기를 치우는 대신 내 방에만 파리가 못 들어오게 꽉꽉 틀어막고 이미 들어온 파리 어떻게 죽이는 게 좋은가를 해결책이라고 내어 놓고 있는 느낌.

원인은 쓰레기이고 파리는 거기에서 파생된 증상이라, 원인을 없애지 않는 한 증상은 계속 이어진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게다가 이건 파리가 특별히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부류에겐 관심을 끌기 어려운 주제라, 잠깐의 유행이라면 모를까, 진정한 의미의 확산이 어려운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내가 아는 이도 잠시 독일에 살기 위해 떠나면서 짐 정리를 하는 와중에 미니멀리즘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선 여자들이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있다는 대목에서 그 사람이 떠 올랐다. 결국, 뭔가 너무 많아서 좀 정리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하는 수준이 아닐까 하는.

박작가나 아츠시나 시부 같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은 자주 얘기하지만,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라 공감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가령 그들이 돈 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이란 가정을 하기만 해도 그의 선택은 여러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최대한으로 이해를 한 바로는 시부라는 미니멀리스트는 한 영상 중에서 테레비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정형화 된 행복한 삶이라던가 하는 거에 영향을 받는 게 싫다는 얘기를 하는데, 유튜브는 매스 미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자신은 또 다른 삶의 정형을 만들어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쓰레기와 파리의 예를 들면 그에겐 쓰레기는 고사하고 파리가 있는 거 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 느낌. 다만 내 방에만 안 들어오면 만사 오케이. 기본적으로 박작가나 아츠시의 상황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들의 방법론은 해결이 아니라 외면.

물론 박작가나 그들이 유튜브를 통해 무얼 파는 지 보다는 팔아내는 방식이 내 관심사이기 때문에 난 이들, 아니 박작가가 과도하게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예를 들어 이번 영상에서도 강요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강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부가 테레비를 통해 받는 영향 정도는 줄 수 있어야 수익이 되는 상황에 자꾸 그런 거 초월한 듯한 캐릭터를 만드는 건 오히려 역효과라는 거다.

사람들이 박작가나 시부의 영상을 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난 단순히 호기심이 가장 크다고 본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갖지 못한 경험을 통한 자극. 테레비에서도 허구헌날 부자들의 집을 보여주거나 형편없이 망한 이들을 자꾸 보여주는 건 그게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자극이 되면 관심을 끌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면 돈이 되는…

그렇다. 지금 이 유튜버들이 수익을 얻는 구조는 기존의 매스 미디어가 수익을 얻는 구조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목표도 ‘수익’으로 같다면 더욱 더 성실하게 카피를 하는 게 맞지, 괜히 자기는 기성 권력에 맞서고 있는 식의 어설픈 캐릭터 설정을 하면 기다리는 건 자가당착의 함정 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또, 미니멀 라이프 자체가 대안으로써의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캐릭터 설정을 하면 자칫 사이비 종교의 전도사 필이 나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거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유지할 수 있는 자극을 만들어내는가에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꾸준히 제공해야 하고, 드디어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미니멀리즘을 팔아먹는 상업 방송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당연히 이런 삶의 방식이 절실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을 위한 컨텐츠도 준비해야겠지만, 계급 의식도 약하고, 가난=패배 라는 인식이 강해서 적응이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여자들의 집정리 수단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미니멀’리즘’ 수준의 내용은 의도와는 다르게 금새 ‘강요’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필요하다고 본다. 방송을 계속 보도록 은근하게 강요를 당하는 것과 방송의 내용이 강요라고 느끼는 건 다르다는 얘기. 상업 방송인은 전자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결론은 다시 말하지만, 상업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선 접근 자체를 좀 더 상업적으로 할 필요가 있고, 결국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방송이 아니라 방송을 위한 미니멀 라이프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헛발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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